법무법인 문장 변호사 임원택
법무법인 문장 변호사 임원택

필자는 보험사가 허위진료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사건에서 의료기관을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보험사는 실손보험금을 받아간 환자들 중 몇몇이 일부 진료를 안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에게 허위진료가 의심되는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제출해달라고 하였고, 의료기관이 거부하자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였다. 의료기관은 제출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의료기관에게는 진료기록을 제출할 의무가 없으므로, 법원은 문서제출명령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먼저 보험사가 문서제출명령의 근거로 내세우는 법률을 보자. 민사소송법은 ‘신청자가 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넘겨달라고 하거나 보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사법상의 권리’가 있으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진료기록은 의료법 제22조 등에 따라 작성된 기록으로서, 환자의 동의 또는 법률상 근거가 없는 한 제3자에게 열람 또는 그 사본의 발급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보험사는 진료기록의 주체인 환자들이 가입한 손해보험의 보험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보험사는 피보험자, 즉 환자의 동의가 없는 한 그들의 진료기록을 요구할 수 있는 사법상 권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보험사는 진료기록의 어떠한 내용이 자신의 주장사실을 입증하는데 필요하며, 이를 통해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보험사는 자신의 주장사실에 대한 근거로 환자들이 보험금을 받아간 내역과 녹취록 일부를 제출하였으나, 그것만으로 진료기록 전체를 봐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보험사가 일부 환자들과 전화로 나눈 대화는 상대방에게 녹음한다는 사실과 녹음목적을 알리지 않았고, 환자 본인의 진술이 맞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증거가치가 인정되지도 않는다. 일부 환자들의 진술만 가지고 의료기관을 다녀간 전체 환자의 진료기록을 보겠다는 것은 명백히 문서제출명령신청을 남용하는 것이다.

보험사가 환자들의 진료기록 전체를 입수하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도 감안해야 한다. 특정 환자의 수년간 의료정보를 획득한 보험사는 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환자정보가 노출되는 사고도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설령 법원이 문서제출명령을 인용하더라도, 제출되는 문서는 최대한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진료기록에는 보험사가 증명하려는 사실 외에도 환자의 많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환자라면 누구나 보험사가 자신의 진료기록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은 주장사실을 입증하는데 필요한 정보만 최소한으로 특정해서 인용하여야 한다.

보험사는 허위과잉 진료가 의심되는 의료기관은 형사고발을 먼저 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최근에는 곧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형사고발은 시간만 많이 걸리고, 보험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험사 직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보험사가 자신의 진료기록을 수집하고 분석한다고 상상해보자. 증거도 없이 막연한 의혹만으로 소를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소권 남용이다. 법원이 보험사의 문서제출명령신청만 엄격히 심사하더라도, 소송 남용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동장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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